#책소개/후기
#단순한열정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 제법 있다.
해마다 연말에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그 모임들중에서도 몇 분만이 몇 개월 후에야 노벨문학상 작품을 소개해 주시곤 했는데 올해는 발표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꽤 많은 분들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개해 주셨다.
평소 노벨 문학상은 유럽애들의 기준으로 뽑는 상이라고 생각해왔기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소개되니 호기심이 생겨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는 허구는 쓰지 않는 프랑스 작가이다. 모든 경험들을 간결하고 객관적으로 써왔기에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당시의 사회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학계보다 사회학분야에서 더 일찍 주목받았다고 한다.
1940년에 태어난 작가는 1988년에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 A를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사랑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고백한 책이다.
A를 만난 이후부터 그녀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p11). 그런 그녀의 사랑은 A가 떠나가고 몇 개월 후에는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p59)"라는 씁쓸함 으로 마무리 된다.
이 책 [단순한 열정]은 말그대로 순수하게 사랑에 빠진 성인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원제를 그대로 해석하면 '무익한 수난'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책에서 그려지는, 화자가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있는 모습을 '무용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모든 사랑이 대부분 무용한 아름다움 이며 결국엔 각자의 길을 따로 가게 되는 이별의 모습이 마지막이지만 [단순한 열정] 속 화자는 너무나 깊게 사랑 속에 들어가 있어서 서글펐다.
그녀도 자신의 사랑이 서글프고 힘겨웠는지 만남과 만남 사이에 이별을 생각하지만, 그가 떠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이별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게 되는 것이 사랑의 고약함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인스타등에 떠도는 표현들 중에는 [애인은 기간제 베프]라는 표현을 봤다. 이 책 속에서 그녀의 애인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는데, 1980년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다. 2000년대 였다면 그녀의 사랑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물론, mbti적으로는 틀림없이 f형일 것 같은 화자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순애보적인 사랑을 할 것 같긴 하다.
그녀 자신의 사랑은 당당할 수 있음에도 상대인 연하의 유부남 애인을 위해 어느 곳에도 표현하지 못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매우 조심하는 남자의 태도에 의해 상처받으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는 그녀가 안타까웠고 상대남성은 그녀의 사랑을 받기엔 지나치게 이기적이며 얄밉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 보면 70페이지의 짧은 글을 읽는 동안 화자에게 매우 이입되어 읽은 것 같다.
그녀의 다음 사랑은 불륜이 아니길 바란다는 내용의 후기들이 많았다. 그런데, 위험한 생각이라고 지적받을 수도 있겠지만, 재수없으면 130살까지 살 수도 있는 세상에서 일부일처제의 수명은 끝난 것이 아닐까 싶다. 40대가 되면 사망하던 시절에는 일부일처제가 가능했겠지만 수명이 이렇게 길어진 시대의 일부일처제는 조금은 가혹하단 생각도 든다. 불륜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고 습관적 외도를 하는 사람들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나 싶다.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이며 매우 희화화된 문장이지만 어찌되었든 사랑이 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마어마하게 간결하며 객관적인 문체로 쓰여진 책인데도, 간만에 매우 감성에 젖어 읽게 되었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단순한_열정 #아니에르노 #최정수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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