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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책읽기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차승민)


꽤 오래 전 인상깊게 봤던 영화로 <오로라공주>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의 여주는 딸을 잃었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 후 살해한 뒷배경 든든한 범인이 비싼 변호사를 써서 정신질환으로 치료감호소에 있음을 알게된다. 살인을 저지른 여자는 본인도 역시 심신 미약으로 치료감호소에 들어오게 된다. 치료감호소에서 그 범인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는 영화였다.

나에게 치료감호소라는 곳의 이미지는 그 영화에서 받은 이미지였다.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의 허울로 교도소가 아닌 곳에서 편하게 형기를 보내려는 사람들이 가는 곳 말이다.

이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은 치료감호소라고 불리는 국립 법무 병원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 차승민씨가 쓴 책이다.




성질 이상한 사람과 스치기만 해도 찜찜한 기분이 오래 가는 법인데, 천 명이 넘는 정신질환을 가진 범법자들과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생활일까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는 자신이 평범한 정신과 의사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명감이나 갇힌 사람들을 구원해야 겠다는 거창한 마음가짐없이 그냥 정신과 치료를 제대로 받아야 할 환자로 대했기 때문에 4년이 넘는 시간동안 근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을 뒤흔들었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pc방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모두 국립 법무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범죄자들을 치료까지 시켜줘야 해?

이런 질문을 저자 역시 품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저자는 국립 법무 병원에서의 치료는 개개인의 복지서비스가 아닌 재범 방지와 사회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강조한다.

총 16개의 챕터들로 구성된 이 책을 읽다보면 꽤 다양한 정신질환과 그로 인한 범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범죄의 스펙트럼도 꽤 넓다. 마음 찡한 사연도 있었고 육성으로 욕이 나올 뻔한 사연들도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는 저자는 치료받는 정신질환은 안전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범죄만 보고 모든 정신 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기 전에, 적기에 치료받을 방법이 없는 구조적 문제를 떠올려주기를 부탁한다. (p269)

이 책을 읽으며 폐쇄병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을 고백한다.
이전에 마냥 강압적이고 반인권적일 것이라 지례짐작한 폐쇄병동은 사실 외부의 위험과 불안요소들로부터 환자를 안심시키고 보호하며 일상적인 생활 루틴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점을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우리 나라에서 사실 화학적 거세라 불리는 성충동 약물치료가 시작되었다는 걸 이 책으로 알았다. 2012년 12월부터 시행되었는데 이 치료를 받은 범죄자들의 재범률은 아직까지 0%라고 한다. 재범률이 높은 범죄라고 알고 있었기에 수감기간 중의 약물치료가 과연 효과있을까 라는 의문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저자가 모든 정신진환자를 치료대상으로 보는 건 아니다.
나쁜 인간은 있다고 말하면서 사이코패스를 얘기한다.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진정한 악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에서 배제하고 있다고 한다.


300페이지 정도의 책인데, 저자의 처음 책이라 문장이 뛰어나다는 말은 솔직히 못 하겠다. 그러나 흥미로운 주제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글들은 이 책의 가독성을 매우 높여주었다.

이 책을 통해 정신질환자와 치료감호소 그리고정신보건법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인식변화와 공론이 생기길 기원한다.

• 폐쇄병동은..잃어버린 환자의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곳이다.. 규칙적인 운동이 몸의 근육을 길러주듯이 규칙적인 일상이 마음의 근육을 길러준다 p47

• 법조인들은 정신질환자가 24시간 내내 미쳐있다고 착각한다
p61


• 뉴스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정신질환 범죄자의 이야기가 나오면 덮어놓고 욕하기 보다는, 국립 법무 병원에서 정신 감정을 통해 잘 밝혀내겠구나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p69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은 위험할 수 있다. 치료받은 또는 치료 중인 조현병은 위험하지 않다. p187

• 안타깝게도 망상장애는 약물이 잘 듣지 않는다. 조현병, 조울중 환자는 향정신병약을 먹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머리를 가득 채웠던 기괴한 피해망상, 과대망상이 조금씩 옅어진다. 그러나 망상장애 환자들이 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상태가 좋아지진 않는다. p225

• 진정한 환자의 인권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는 것.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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